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안정적으로 보였어요. 성장률도 나쁘지 않았고, 물가도 크게 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3년 뒤인 1973년, 칠레의 인플레이션은 약 600%까지 치솟았어요. 같은 정권, 같은 정책 기조인데 어떻게 초반의 안정이 3년 만에 이렇게 극단적인 붕괴로 뒤바뀐 걸까요?
아옌데 정권의 경제정책은 무엇을 겨냥했을까?
아옌데 정권의 경제정책은 가격통제, 수요 확대, 정부의 경제 개입 확대라는 세 축으로 사회 전반의 재분배를 겨냥한 좌파 포퓰리즘 정책이었어요. 정치학 문헌이 정의하는 포퓰리즘의 전형대로, 아옌데는 사회를 “국민”과 “엘리트”로 나누고 자신을 국민의 유일한 대표로 내세웠어요. 좌파 포퓰리스트답게 공격의 대상은 금융, 자본가, 다국적기업, 은행 같은 경제 엘리트였고, 이들의 영향력을 걷어내는 방식으로 재분배를 밀어붙였죠.
그 실행 수단이 중앙은행이었어요. 아옌데 정부는 법 개정이라는 정식 절차 대신 여러 하위 법령만으로 중앙은행에 대한 전면적 통제권을 확보했어요. 의회 동의가 필요한 입법보다 행정부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하위 법령이 훨씬 빠르고 저항도 적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확보한 통제권으로 중앙은행의 화폐발행을 통한 재정지원을 계속 확대했고, 그 결과 정부 대출 규모가 1973년 GDP의 약 40%까지 급증했습니다.
왜 초반에는 성장과 물가안정이 동시에 가능해 보였을까?
초반에 성장과 물가안정이 동시에 가능해 보였던 이유는 유휴 생산능력과 충분한 외환보유고, 그리고 고정환율·가격통제라는 인위적 억제 장치가 함께 작동했기 때문이에요. 정권 초기 칠레 경제에는 쓰이지 않고 남아 있던 생산설비가 있었고, 외환보유고도 여유가 있었어요. 이 조건에서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도 곧바로 물가가 뛰지 않아요. 남는 생산능력이 늘어난 수요를 흡수해주기 때문이죠.
여기에 고정환율과 가격통제가 겹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통계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어요. 정부가 가격을 법으로 묶어두면 시장에서 실제 벌어지는 초과수요는 물건 부족이나 암시장 같은 형태로 숨어버리지, 공식 물가지수에는 반영되지 않거든요. 결국 이 시기의 안정은 진짜 균형이 아니라 눌러둔 압력이었던 셈이에요. 겉보기엔 성장과 물가안정이 동시에 잡힌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뒤에서 압력이 계속 쌓이고 있었던 거예요.
억눌린 압력은 어떻게 터졌을까?
억눌린 압력은 수입 병목과 외환보유고 고갈이 맞물리며 통화 평가절하로 터져 나왔어요. 확장정책이 계속되면서 수입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정작 이를 뒷받침할 외환보유고는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어요. 고정환율을 유지하려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방어해야 하는데, 보유고가 마르면 더는 그 방어가 불가능해져요.
결국 통화가 평가절하됐고, 그동안 가격통제로 억눌려 있던 물가 상승 압력이 여기에 통화발행 확대까지 겹치면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어요. 확장정책과 통화발행이 맞물리는 순간, 눌러뒀던 물가는 폭발적으로 튀어 올랐습니다. 그 결과가 1973년의 약 600% 인플레이션이었어요. 이 메커니즘은 재정적자를 통화로 메우면 결국 물가로 그 대가를 치른다는 사전트-월리스의 불쾌한 통화주의 산술 논리와 정확히 겹쳐요.
정권 붕괴 이후 칠레는 어떻게 물가를 다시 잡았을까?
정권 붕괴 이후 칠레는 중앙은행을 재정지원 수단에서 물가안정 수단으로 완전히 재편하며 인플레이션을 다시 잡았어요. 1973년 정권이 전복된 뒤 들어선 새 정부(비민주적 정부)는 중앙은행에 대한 장악력을 그대로 유지하되, 그 목표만큼은 정반대로 뒤집었어요. 재정지원 창구였던 중앙은행을 인플레이션 억제 기구로 전환하고, 재정적자 축소를 핵심 반인플레이션 전략으로 세웠죠.
여기에 수입관세 인하, 금융 자유화, 자본계정 개방 같은 구조개혁까지 병행하면서 경제 체질 자체를 바꿨어요. 이런 식으로 포퓰리즘 정권이 남긴 상처가 오히려 이후 정권의 제도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동력이 되는 패턴은 칠레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포퓰리즘을 겪은 나라의 중앙은행이 오히려 더 독립적인 이유에서 다루듯, 이는 IMF 워킹페이퍼가 여러 나라 데이터에서 공통으로 확인한 패턴이에요. 비슷한 시기 아르헨티나 중앙은행법도 위기 이후 개혁이 뒤따르는 유사한 흐름을 보였어요.
칠레의 3년은 결국 겉보기 안정과 실제 균형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예요. 통계 위에 드러난 숫자가 잠잠하다고 해서, 그 밑에서 쌓이고 있는 압력까지 없는 건 아니라는 교훈이 지금도 유효하지 않을까요?
출처
- Jácome, Luis I., Nicolás E. Magud, Samuel Pienknagura, and Martín Uribe. “Fiscal Populism and Monetary Policy Rules.” IMF Working Paper No. 26/167, International Monetary Fund, August 2026.
- Central Bank of Chile, Annual Reports 1970-1973
자주 묻는 질문
Q1. 칠레 아옌데 정권의 인플레이션은 몇 년 만에 얼마까지 치솟았나요?
1970년 집권한 아옌데 정권 아래서 인플레이션은 3년 만인 1973년 약 600%까지 치솟았어요. 정권 초기에는 오히려 물가가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는 점에서 이 급등은 더 극적이었어요.
Q2. 아옌데 정권은 중앙은행을 어떻게 통제했나요?
법 개정 없이 여러 하위 법령만으로 중앙은행에 대한 전면적 통제권을 확보했어요. 의회를 거치는 정식 입법 절차 대신 행정부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하위 법령을 동원해 화폐발행을 통한 재정지원 통로를 열었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Q3. 1973년 칠레의 중앙은행 정부 대출 규모는 얼마나 됐나요?
1973년 중앙은행의 정부 대출 규모는 GDP의 약 40%까지 급증했습니다. 이는 아르헨티나가 1990년대 개혁 이전에 기록했던 위기 수준과 비슷한 규모예요.
Q4. 초기에 성장과 물가안정이 동시에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휴 생산능력이 남아 있었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했던 초기 조건 덕분에, 확장적 재정정책이 곧바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어요. 여기에 고정환율과 가격통제가 물가 상승을 인위적으로 억누르면서, 실제로는 뒤에서 압력이 쌓이고 있는데도 겉으로는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생겼어요.
Q5. 칠레는 정권 붕괴 이후 인플레이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요?
1973년 정권이 전복된 이후 새 정부가 중앙은행을 완전히 장악하되 정책 목표를 인플레이션 억제로 전환하고, 재정적자 축소를 핵심 반인플레이션 전략으로 삼았어요. 수입관세 인하, 금융 자유화, 자본계정 개방 같은 구조개혁도 함께 추진했습니다.
Q6. 가격통제와 고정환율이 무너진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수입 병목과 외환보유고 고갈이 겹치면서 더는 고정환율을 유지할 수 없게 됐고, 결국 통화 평가절하로 이어졌어요. 억눌려 있던 물가 상승 압력이 평가절하와 함께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 1973년 인플레이션 급등의 직접적인 계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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